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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고양이와 의자와 나

by 고독한집사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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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의자만 세 개가 있다. 이 쪼그만 방에 왜 의자만 세 개인가?

하나는 화장대용 의자다. 하지만 내 화장대 아래에는 상추의 식기와 정수기가 있기 때문에 그냥 드라이기 넣는 통이다. 게다가 상추가 맨날 발톱 걸고 장난 쳐서 넝마가 따로 없는데, 난 미감이 둔하달까 무디달까 그런 거에 신경 안 써서 그냥 수납의 기능은 잘하니까 냅두는 중이다.

하나는 쓰지 않는 좌식의자. 예전 집에서 쓰던 건데,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접어서 방구석에 뒀다. 당근에 팔아 버리고 싶은데 이 애물단지는 팔리지도 않는다. 버리기도 귀찮아서 그냥 또 내버려 두는 중이다.

마지막은 문제의 이케아 의자인데, 이건 내가 책을 읽거나 앉아서 핸드폰을 하는 등 아주 사랑하는 의자다. 틈만 나면 누워 버리는 탓에 자꾸 역류성 식도염이 도져서 나의 건강 관리 차원에서 산 건데 이 의자 너무 폭신하고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의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우리 고양이께서도 이 의자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 다만 얘가 뭔가를 쓰면 털도 엄청 붙고 가끔 응가 도장도 찍어서 관리가 귀찮긴 한데, 그것도 나는 괜찮다.
하지만 자꾸 나를 이 의자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건 안 괜찮다.

요즘 상추가 내가 의자에 앉으면 내 앞에 와서 무릎에 앞발을 올리거나, 앞발로 톡톡 치는 일이 잦았다.

이렇게 와서 앉아서 빤히 바라보다가 툭툭 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거 눈치 주는 거였냐
저기요?

내가 대꾸하면서 일어나면 밥그릇으로 스르르 움직이고는 밥을 먹는 척하다가 휙 돌아서 버리는 일도 잦고. 난 처음에는 그냥 밥 혼자 먹기 싫어서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어제 드디어 깨달았다. 이 녀석 나를 의자에서 일으키려고 그러는 거였다.

저렇게 귀엽게 앞발로 날 끌어낸 뒤 내가 의자에서 나오면 자기가 홀딱 올라가서 안 내려온다. 와, 내가 이거 깨닫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날 치우고 자는 중
이러고 앉아 있다. 요염 당당.
네, 님 하세요

저 조그만 머리통에서 나온 생각인 게 너무 귀엽긴 한데, 나한테 의자 하나 양보 안 해 준다니 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기가 좋다는데 내가 어쩐단 말인가. 양보해야지.
앞으로는 그런 밥 먹는 척 퍼포먼스 안 해도 그냥 앞발만 올려도 눈치껏 얼른 비켜 줘야겠다.
하, 요 영악한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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