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의자만 세 개가 있다. 이 쪼그만 방에 왜 의자만 세 개인가?
하나는 화장대용 의자다. 하지만 내 화장대 아래에는 상추의 식기와 정수기가 있기 때문에 그냥 드라이기 넣는 통이다. 게다가 상추가 맨날 발톱 걸고 장난 쳐서 넝마가 따로 없는데, 난 미감이 둔하달까 무디달까 그런 거에 신경 안 써서 그냥 수납의 기능은 잘하니까 냅두는 중이다.
하나는 쓰지 않는 좌식의자. 예전 집에서 쓰던 건데,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접어서 방구석에 뒀다. 당근에 팔아 버리고 싶은데 이 애물단지는 팔리지도 않는다. 버리기도 귀찮아서 그냥 또 내버려 두는 중이다.
마지막은 문제의 이케아 의자인데, 이건 내가 책을 읽거나 앉아서 핸드폰을 하는 등 아주 사랑하는 의자다. 틈만 나면 누워 버리는 탓에 자꾸 역류성 식도염이 도져서 나의 건강 관리 차원에서 산 건데 이 의자 너무 폭신하고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의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우리 고양이께서도 이 의자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 다만 얘가 뭔가를 쓰면 털도 엄청 붙고 가끔 응가 도장도 찍어서 관리가 귀찮긴 한데, 그것도 나는 괜찮다.
하지만 자꾸 나를 이 의자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건 안 괜찮다.
요즘 상추가 내가 의자에 앉으면 내 앞에 와서 무릎에 앞발을 올리거나, 앞발로 톡톡 치는 일이 잦았다.
내가 대꾸하면서 일어나면 밥그릇으로 스르르 움직이고는 밥을 먹는 척하다가 휙 돌아서 버리는 일도 잦고. 난 처음에는 그냥 밥 혼자 먹기 싫어서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어제 드디어 깨달았다. 이 녀석 나를 의자에서 일으키려고 그러는 거였다.
저렇게 귀엽게 앞발로 날 끌어낸 뒤 내가 의자에서 나오면 자기가 홀딱 올라가서 안 내려온다. 와, 내가 이거 깨닫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저 조그만 머리통에서 나온 생각인 게 너무 귀엽긴 한데, 나한테 의자 하나 양보 안 해 준다니 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기가 좋다는데 내가 어쩐단 말인가. 양보해야지.
앞으로는 그런 밥 먹는 척 퍼포먼스 안 해도 그냥 앞발만 올려도 눈치껏 얼른 비켜 줘야겠다.
하, 요 영악한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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