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던 집은 층이 낮고 창문이 돌출형이라 상추가 창문 자리를 엄청 좋아했었다. 창문 쪽으로 쏙 숨어 버리면 되도록 건드리지 않아서 은신처 기능도 했었고.


지금 사는 집은 그런 포근한 창문 은신처는 없지만, 중문이 있는데 이게 상추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겐 굉장히 좋다. 왜냐하면 중문이 유리라서 퇴근할 때마다 상추의 마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도 마중은 나왔지만, 그때는 문이 불투명해서 상추가 어떤 얼굴로 날 반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문 하나 열면 바로 복도니까 혹시라도 뛰쳐나갈까 봐 얼른 상추 못 나가게 막고 문을 닫기 바빴고.(실제로 한 번 튀어나가서 아래층까지 간 뒤, 그대로 문이 열려 있던 남의 집으로 돌진해서 평안하게 저녁을 즐기시던 아랫집 할머니를 기함하게 한 전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고양이들이 탈출해서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꼭 조심해야 한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냥 문 앞에 앉아 있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문에 달라붙어서 반갑게 반겨 준다.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나면 벌써 중문 쪽에 와서 냥냥 울 때도 있다.

아무리 피곤하고 기분이 울적한 날이라도 상추의 냥냥 소리가 문 틈으로 들리면 오늘도 살아 돌아와서, 내 고양이가 날 반갑게 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내 발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생환을 즐거워하는 건 언제나 마음속에 핫팩을 넣고 다니는 기분이다.
그리고 중문에 붙어서 냥냥 거릴 때는 두 발로 서 있으니까 귀엽고, 실내가 살짝 어둑하기 때문에 동공도 확장되어 있어서 눈도 평소보다 훨씬 땡글해진다.

즉, 평소보다 많이 귀여워 보인다는 점이다. 귀여운 얼굴로 예쁜 짓을 하니까 내 마음이 무장해제 될 수밖에.


무균실에 들어갈 때 온몸의 더러움을 씻어내듯, 중문 앞에서 상추의 귀여운 마중을 받으며 밖에서 묻혀 온 피로와 불안을 털어낸다.
마침내 문을 열고, 나를 반기는 고양이의 따스한 체온과 부드러운 털을 손으로 하나 가득 느끼면서 말하는 거다.

"상추야! 잘 놀았어? 누나가 오늘도 상추 사료값 벌어왔어!"



'집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축🎉 퇴사 1일차+야옹이 구강검진 무사 통과 (39) | 2021.11.26 |
---|---|
피단 스튜디오 펫큐브 고양이 놀이터 (32) | 2021.11.24 |
고양이 장난감, 미니 당구대 (25) | 2021.11.15 |
도착! 세묘사진관의 묘생사진 (30) | 2021.11.05 |
고양이 장난감, 로봇 물고기 (22) | 2021.1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