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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치아흡수성병변(FORL)

by 고독한집사 201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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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흔한 고양이 질병,FORL(치아흡수성병변)

고양이들은 참 예민하고 연약한 동물들이다. 안 약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고양이 카페를 들어갈 때마면 정말 고양이들이 얼마나 많은 질병을 앓을 수 있는지 놀란다. 우리 상추는 올 때부터 설사쟁이였고, 눈 한쪽에는 흉터가 있어서 집사를 잔뜩 겁먹게 했다. 벅벅 긁어서 피가 나질 않나! 치석은 또 얼마나 잘 끼고 구내염에는 취약한 동물인지!

그러면서 양치는 싫어하고 약 먹는 건 더 싫어한다.

오늘은 치아흡수성병변에 대해 쓸 건데, 내가 알기로 이 병은 자가면역질환이며 발생하는 명확한 원인과 치료법은 아직 없다. 치아가 녹아서 잇몸 속으로 흡수되는데, 방치할 경우 잇몸과 턱뼈까지 녹을 수 있다. 통증이 무척 심하다. 완치라는 개념이 없으며 진행성 질환이라 꾸준한 관리와 검사가 필요하며 현재 최선의 치료책은 발병한 치아를 발치하는 것이다.

처음에 내가 상추의 이상을 발견한 것은 2017년 여름이었다.

양치를 아주 드문드문 시키던 나는 오랜만에 양치를 시키려고 상추 입을 열었다가 이상한 걸 보았다.

선생님, 왜 잇몸이 뻘게요?

일단 잇몸 사진을 찍고 다음 날 사진을 들고 동물 병원을 방문했다. 평소 다니던 곳이 아닌 다른 병원이었다. 거기서 치은염 같다는 이야길 듣고 약을 처방받았다. 3일 치였나?

일단 약을 먹였는데 약을 먹여도 차도가 없는 것 같았다. 역시 사진으로 진료를 보는 건 무리가 있나 싶어서 상추를 데리고 다니던 병원을 갔다. 거기서도 치은염 같다는 이야길 듣고 약을 추가로 받았다.

그런데도 약을 먹이면서 무언가 찜찜하고 불안했다. 고양이 카페에도 사진을 올렸는데 구내염 치은염 같다는 이야기.

그러다 치아흡수성병변일 수 있단 댓글을 받았고, 병을 찾아보고 기함을 했다. 현실부정!

치아흡수성병변의 흔한 증상으로 꼽히는 것.

1. 입 냄새 증가. (단순히 사료 냄새가 아니라 정말 악취가 난다고 한다. 치아가 잇몸 안에서 녹고 있기 때문에.)

2. 밥을 안 먹고 입에 손을 대면 예민해짐. (이 병은 통증이 심해서 무얼 먹기가 힘들어지며 아프기 때문에 양치나 집사가 입에 손대는 걸 거부한다.)

3. 침을 흘림. 

4. 잇몸이 붉어지고 피가 남.

이 네 가지 가운데 상추가 해당하는 것은 잇몸이 붉어지는 것뿐이었다.

다시 상추를 데리고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고양이를 잘 본다는 병원으로 갔다. 선생님한테 치아흡수성병변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그거냐? 라고 물었더니 그건 육안으로는 확진이 어려우니 치과 설비가 갖춰진 곳에 가 보라고 하셨다.

검색을 통해 치과 설비가 갖추어진 전문 병원에 찾아갔고 진료를 받았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확률은 낮지만 치석도 꽤 있으니 스케일링을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고 확진이 나오면 발치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예약을 잡고 집에 왔다. 그날부터 나의 자괴감과 폭발적인 불안감 때문에 맨날 검색하고 심각한 증상 사진들과 전발치라는 무서운 말을 보면서 눈물 바람+평소 안 하던 기도 등등을 했다.

예약일, 아무것도 모르는 상추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상추를 병원에 맡기고 울며 불며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스케일링 진행하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고 증상이 있으면 발치를 할 건데 혹시 이상이 생기면 전화 주겠다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그런데 전화벨이 울렸다.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상추는 치아흡수성병변이 맞고, 겉으로 봤을 때는 증상이 심한 게 없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발치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전화였다. 알겠다고 필요한 처치는 모두 해 주십사 하고 전화 끊고 또 펑펑 울고.

2시 예약이었는데 7시쯤 찾으러 갔다. 

선생님이 보통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발병하는데 상추는 어린 나이에 발병을 했고 경우가 특이하다고 하셨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래쪽 송곳니가 증상이 심해서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그래도 발치 수술은 잘 되었고 상추는 이때 5개의 치아를 뽑았다.

그리고 이 병은 진행성이기 때문에 꾸준히 검진을 와야 하니 1년 뒤에 스케일링 겸 꼭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발치하고 약을 다 먹을 때쯤엔 잇몸에 붉은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다녀왔다.

그 뒤로 수시로 입을 열어서 잇몸을 확인하는데 공포의 붉은색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치석도 별로 안 쌓여서 최대한 미루고 있었는데 또 허둥지둥 병원에 가서 예약을 잡았다.

그나마 다행으로 이번엔 2개만 발치했다. 이게 다행인가 싶긴 하지만 선생님이 다행이라고 하셨으니 다행으로 알아두자. 내 마음 찢어지는 것은 똑같지만.

이번에는 마취가 더 힘들었는지 수술 후 집에 와서 훨씬 오랫동안 상추가 멍하고 뭔가 평소랑 달라서 너무 걱정스러웠다. 삐진 것도 저번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오래갔다. 지금은 평소처럼 잘 놀지만.

마취도 고양이한테 엄청 부담스럽고 안 좋다는데 내년에 또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상추는 영문도 모른 채 정신이 들면 이가 사라지고 없으니 억울할 것이고. 어쩌자고 이런 고약한 병이 있는걸까?

아무튼 혹시 고양이가 잇몸이 붉어졌다면 꼭 바로 치과 전문 병원으로 데려가길 바란다.

괜히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시간과 마음고생만 하느니 처음에 제대로 진료받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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