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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상추 이야기

by 고독한집사 201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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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에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맨 처음 사진처럼 저렇게 퍼져 있다가 테이블 위로 올라와서 세상 뻔뻔하게 있는 게 너무 귀여웠다.
당연히 카페에서 키우는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카페에서도 처음 본 고양이인데 주인 올까 봐 그냥 두고 있다고 했다.

퇴사도 앞두고 앞으로 여유로워질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주인이 안 나타나면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카페 쪽에서는 반가워하며 그럼 자기들이 일주일 정도 데리고 있으며 주인을 찾아보고, 못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왔는데 문득 고양이 눈 한쪽이 이상한 게 마음에 걸렸다.
찾아보니 고양이 백내장인가 싶어 겁이 났지만 이미 데려오겠다고 결심했으니 수술비가 들면 드는 거지, 내 팔자려니 하고 마음먹었다.

일주일 뒤 주인을 못 찾았다는 연락이 왔고 데리러가기로 날을 정한 뒤 급히 이동장, 사료, 모래를 사고 검진 받을 가까운 병원을 알아 놓았다.

이름은 엄빠가 키우는 고양이가 깻잎이니까 이 녀석은 상추로 결정.

데리러가 보니 카페에서 사랑도 많이 받고 잘 지낸 거 같았다. 직원분들도 헤어지는 거 너무 아쉬워하고.

상추를 이동장에 싣고 몇 걸음 못 가서 상추가 설사를 해 버렸다.
원래대로면 상추를 데리고 스터디 갔다가 택시 타고 갈 예정이었는데!
(스터디를 가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점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스터디 취소하고 택시 타고 가는데 냄새가 너무 나고 상추가 계속 울어서 홍대에서 내렸다. 기사 아저씨가 좋은 분이라 오히려 상추 걱정해 주셨는데!! 그때의 무지했던 나는 동물병원에서 상추을 씻기고 가야겠다는 맹랑한 생각을 했다 ㅠㅠ
그때 그냥 쭉 집으로 갔었어야 했는데.
첫 번째 동물병원에서 고양이를 목욕시키려면 마취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물러나고 두 번째 동물병원에서도 목욕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두 번째 동물병원에서 이동장을 새로 사고 물티슈로 상추를 좀 닦고 다시 택시를 탔다.
다시 또 상추는 울고 냄새는 나고 이번 기사분은 화를 내시고... 집까지 정말 지옥 같은 10분이었다.
집 근처에서 내려서 봐 뒀던 동물병원에서 간단히 검진을 받고 약 3~5개월 된 수컷 고양이라는 말과 걱정했던 눈은 백내장이 아니고 아마 엄마 배 속에서부터 있었을 흉터라고 한다. 다행히 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집에 와서 상추 목욕 시키고 상추도 뻗고 나도 뻗고 ㅠ
이렇게 상추와의 첫날은 강렬하게 남았다.

아. 지금 내가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좀 더 자주 상추를 만나러 가서 얼굴도 익히고 조심히 데려왔을 텐데.

지금도 상추는 차를 타면 울고 개구호흡을 한다.
저때의 트라우마인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

우리집에 온 첫날의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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