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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먹은 거

삼청동 르꼬숑

by 고독한집사 201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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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고급스러운 식사를 했다. 삼청동 르꼬숑에 다녀왔다. 르꼬숑은 프랑스 가정식 코스를 제공하는 식당이다. 

외관은 일반 주택처럼 생겼다. 입구는 이렇다.

예약을 하고 갔고, 도착했더니 이런 장소로 안내받았다. 샹들리에가 예쁘다. 방이고 옆 테이블에는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앉으면 물을 주고, 버터와 빵을 내준다. 버터 위에 소금이 뿌려져 있다.

빵은 따뜻하고 아주 맛있다. 프랑스에서 공수한 밀가루로 만들었다더니 빵만 따로 팔았으면 싶을 만큼 고소하고 쫄깃했다.

계절별로 코스가 바뀌는데 내가 갔을 때는 미장센이라는 코스였다. 

미장센의 코스 구성은 '바스락거리기(생 트러플 아뮤즈 부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감자 마들렌과 치즈), 알뤼르(달팽이 에스까르고), 노란 겨울(알자스 퀴시 플람베 어니언 스프와 머스터드), 곡식의 비밀(달고기 라 마르세예즈), 기다림(새우와 미몰레뜨 치즈), 라비앙드 로즈(한우1++ 앞치마살), 오후의 노래(게이샤 커피), 눈 발자국(까망베르 치즈), 오래될 그리움(한라봉 그라세 디저트),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갸또 오 쇼콜라)로 구성된다.

와인 페어링을 추가하면 코스에 어울리는 세 종류의 와인이 알맞은 메뉴가 나올 때 한 잔씩 나온다. 같이 간 친구는 와인 페어링을 했는데 와인 설명도 잘해 주고 와인 맛도 좋아서 좋았다고 한다. 나도 술만 마실 수 있었다면 와인을 추가하고 싶었다.

가장 처음에 나온 바스락거리기(생 트러플 아뮤즈 부쉬). 꽂혀 있는 검은 향초 같은 건 파스타이다. 저것까지 다 먹을 수 있다. 적은 양이지만 베이컨과 트러플 향이 아주 식욕을 돋구었다. 파스타도 짭짤하고 바삭바삭해서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감자 마들렌과 치즈). 감자를 마들렌 틀에 구운 것과 야채, 그리고 통치즈를 가져와서 내가 보는 앞에서 잘라서 저렇게 마들렌 위에 꽃처럼 얹어 준다. 이런 과정이 먹는 즐거움을 더했다. 그러면서 재료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해 주기 때문에 이게 뭐지? 하는 고민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알뤼르(달팽이 에스까르고). 달팽이다. 집게로 달팽이 껍데기를 잡고 꼬치 같은 걸로 속을 끌어내서 먹는다. 달팽이 처음 먹어 봤다. 

노란 겨울(알자스 퀴시 플람베 어니언 스프와 머스터드). 너무 귀여운 그릇에 담겨서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열면 이렇게 음식이 들어 있다. 상당히 뜨거워서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치즈와 양파의 조화가 좋았다. 속을 따뜻하게 달래는 겨울 음식이다 싶은 맛이었다. 

곡식의 비밀(달고기 라 마르세예즈). 달고기가 뭔지 찾아보고 먹었다. 달고기는 물고기였다. 달고기도 처음 먹어 봤다. 위에 갈색으로 올려진 것은 당근이다. 당근도 바삭하고 맛있고, 가리비도 촉촉하고 쫄깃하다. 달고기는 내가 아는 일반적인 생선의 식감이랑 달랐다. 생각보다 살이 단단하고 살결이 씹히는 느낌이 재밌었다.

기다림(새우와 미몰레뜨 치즈). 어린왕자와 소행성과 장미 콘셉트의 음식. 왜 기다림인지도 한번에 이해했다. 르꼬숑의 특징이 각 메뉴마다 콘셉트와 이야기가 있고,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여태껏 나왔던 이야기 중에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 깜찍한 미니 장미와 어린왕자 피규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안에는 새우를 으깬 속이 들어 있다. 새우살이 탱글하게 씹히고 향이 진하다.

라비앙드 로즈(한우1++ 앞치마살). 메인 메뉴. 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함께 나온 버섯과 양파도 고기와 잘 어울리게 조리되어서 이때 꽤 배가 불렀는데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오후의 노래(게이샤 커피).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 부드러운 향과 맛을 자랑한다. 뒤에 나올 디저트들과 잘 어울렸다.

눈 발자국(까망베르 치즈). 까망베르의 향이 진하게 풍기는 치즈다. 앙증맞은 양이지만, 치즈의 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배가 부르니까!

오래될 그리움(한라봉 그라세 디저트). 아이스크림인데 위에 올린 한라봉 시럽이 상큼하고 향이 좋다.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갸또 오 쇼콜라). 나무 그루터기에 나와서 깜짝 놀란 디저트. 마지막 디저트라 아쉽기도 했다. 부드럽고 찐득한 브라우니의 맛이다. 

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메뉴가 나올 때마다 그에 맞는 식기를 가져다준다. 음식이 담긴 식기도 전부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서 좋았다. 설명이 친절한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 식사하는 동안 수시로 우리가 먹는 속도를 확인하시며 조용히 다녀가신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코스에 르꼬숑만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점. 메뉴가 하나 나올 때마다 메뉴 이름과 그에 담긴 이야기가 적힌 종이를 준다. 그리고 그 종이들을 모아서 식사가 끝나면 인장을 찍어서 준다. 인장도 보는 자리에서 밀랍을 직접 녹여서 찍어 준다. 그리고 날짜까지 새겨 주니까 추억으로 남기기엔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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